이번 미국 여행은 작년 7월에 미국 공립고등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큰녀석 위문차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달에 다녀왔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전세계가 난리네요. 예약을 취소할 수 없는 최저가 항공편과 호텔편으로 다녀왔는데, 3월에 계획을 세웠었다면 정말 아찔할 뻔 하였네요.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학생이 지역과 호스트패밀리를 선택할 수 없고, 자기 소개서를 올려놓으면 자원봉사자인 호스트패밀리가 초이스하는 시스템이기에 내심 어디로 가게 될까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요. 재단에서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배정되었습니다!'라고 연락이 와서 처음에는 사실 약간 실망도 했었습니다. 아마 옛날 주말의 명화 같은데서 보았던 텍사스가 떠올랐나봅니다. 검색을 좀 해보니 인구는 140만정도로 나오고, 텍사스 주에서는 휴스턴 다음으로 인구가 많으며 미국 전체에서는 7번째 도시라고 하네요. 아주 유명한 랜드마크가 없어서 저는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큰 도시였습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샌안토니오에 뭐가 있나 검색을 해보니 리버워크와 알라모 요새가 가장 많이 나오더군요. 우리나라 서울의 청계천의 모델이 된 도시라고 하네요. 사진으로 보니 굉장히 이뻐서 여기를 1순위로 가보자라고 마음 먹고 왔습니다.
나중에 LA를 가보고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샌안토니오가 LA보다 훨씬 깔끔하고 조용하고 정돈되어 있습니다. 도로 상태도 아주 좋구요. (물론, 제가 가본 곳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 리버워크 (Riverwalk)
우버에 Riverwalk를 찍고 불러서 내린 후, 가장 가까운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데 하천을 참 깔끔하게 정비해놨더군요. 이런 분위기를 '고즈넉'하다고 하던가요. 하천을 따라 음식점과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유람보트도 대기하고 있고, 토요일이었는데도 사람은 그리 북적대지는 않았습니다. 뭐 땅크기가 워낙 넓은 나라이니, 주말 피크타임에도 우리나라 강남이나 명동같이 붐비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청설모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놓은건 칭찬해주고 싶네요. 하천변을 따라 쭉 걸으면 점심시간 산책으로 안성맞춤일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야경이 참 예쁠 것 같은데, 일정상 밤에 와보지는 못했습니다.
가족끼리 사진을 찍으면서 걷고 있는데, 젊은 남자 하나가 말을 겁니다.
Man : Hey! You guys from Japan?
나 : No, We're fromm Korea
Man : North? or South?
나 : South
Man : (엄지척을 하며) Cool~
외국을 다니면서 한국말을 쓰고 있으면, 말을 거는 외국인중에 저런 질문을 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습니다. 대체 뭐가 Cool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구분하는 수준으로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를 인식하고 있는걸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긴 하네요.
걷다 보니 Alamo St. 가 나옵니다. 이제 알라모 요새를 보러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다들 시큰둥해요. 겉으로 말은 안했지만, '요새같은데를 왜 보러가자는거지?' 뒤통수가 따가워서, 미리 공부하고 온 내용을 열심히 설명해줍니다.
나 : '알라모 요새는 말이야, 텍사스에서 아주 유명한데 여기서 엄청난 전투가 있었데... 그 전투가 뭐냐 하면..'
마나님과 딸들 : '아웅~ 몰라 빨리 가기나 해'
다리 위로 올라와서 보니 또 풍경이 멋집니다. 날이 조금 흐려서 사진이 칙칙하게 나왔네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텍사스에서는 성조기 옆에 항상 주기를 같이 게양할 정도로 주기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고 하네요. 다른 주에서는 정부기관 정도에서나 성조기 옆에 주기를 게양하는 정도라고 합니다.
리버센터 쇼핑몰에 들러서 스타벅스 커피도 좀 마시고, 옷도 좀 샀네요. 옷들은 가격이 매우 저렴했는데 중국에서 만든 제품들이었습니다.
멕시코와 가까운 도시여서 그런지, 죽은자의 날 분위기의 장식물들이 좀 많이 보였습니다. 큰애의 호스트 맘도 친정집이 국경지대와 바로 인접한 피에드라스 네그라스 (Piedras Negras) 라는 곳이라고 하고, 큰애도 같이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니 확실히 미국하고는 또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 The Alamo (Fort Alamo, Mission Alamo, MisiónSan Antoniode Valero)
텍사스는 원래 멕시코 땅이었고, 미국 이주민들이 멕시코 정부의 허락을 받고 이주해서 살다가 10여년간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했던 역사가 있었네요. 텍사스가 미국으로 편입되는 것을 막으려한 멕시코 군이 알라모 요새를 공격하여 186명중 3명을 제외한 183명을 사살했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당시 멕시코 군의 규모는 1800명부터 8000명까지 다양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어쨌건 알라모에서 10배 이상의 병력을 상대로 13일이나 버텨준 덕분에, 텍사스 시민군이 정비할 시간을 벌어주었고 다음 전투인 샌 재신토(San Jacinto)에서 큰 승리를 거둔 발판이 되었다고 합니다. 300여명의 스파르타군이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수백만의 페르시아 군대를 저지하여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그리스의 나머지 도시국가들이 대규모 군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와 유사하네요.
원래 이곳은 '알라모 전도소'라 해서, 천주교 교회라고 합니다. 멕시코에서 쳐들어오자 임시 요새로 썼던 것 같습니다. 저 아저씨가 보고 있는 것이 알라모 요새 (알라모 전도소)의 모형인데, 아무리 봐도 군사 요새의 모양은 아니었어요. (적을 방어해야 하는데 요새 벽에 저런 커다란 창을 뚫어놓을리가 없죠)
박물관이 있었는데, 공간은 크지 않았고 주로 알라모 전투 시대에 사용했던 총과 군복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었고, 알라모 전투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았던 것은 전사한 183명의 명단이었습니다. 이름 옆에 태어난 곳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은 미국의 각 주 이름이었고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출신들도 있었습니다. 원래 영국인들이 와서 건설한 식민지이니 영국사람들이야 그렇다치는데 소수의 독일인과 덴마크인이 있어서 궁금했습니다. 독일인이 저 시대에 미국 그것도 텍사스에서 왜 목숨걸고 멕시코와 싸웠을까요? 이 의문은 다음날 '우리 어디가지?' 하면서 검색하다가 독일인 이주마을이라는 '프레데릭스버그'(Fredericksburg)'라는 곳을 보고 약간 풀렸습니다. 얼마전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미드웨이'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미군 제독 '체스터 니미츠'와 관련된 박물관이 프레데릭스버그에 있다고 하는데, 역시 체스터 니미츠는 프레데릭스 버그에서 태어났다고 하네요. '니미츠'라는 성도 영국이나 미국인의 성이 아니라 독일냄새가 물씬 나지 않나요?
여튼, 1800년대에는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각지에서 온 이주민들이 여기저기 정착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고, 텍사스에는 독일인들이 한곳에 정착하면서 '프레데릭스버그'라는 독일식 이름을 붙인 것이죠.
수도원이어서 그런지, 벽들도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기념품 샵도 멋지게 만들어놨네요.
# Tower of the Americas
알라모 요새에서 지루함에 하품을 쩍쩍하는 작태를 보고 안되겠다 싶어서 미국 역사 공부를 중단하고, 뭔가 새로운 목표를 던져야 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높은 탑을 하나 발견합니다. "저거 뭐냐! 저기 한번 가보자!" 구글맵을 켜보니 저것이 Tower of the Americas 라는 것 같습니다. 검색해보니 '한때 미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었음' 이라고 합니다. 남산타워 같은 곳이니 가자! 를 외치고 열심히 걸어갑니다.
1층에는 간단한 음식점과 기념품샵이 있었고, 입장하려면 팔찌형태의 자유이용권같은 것을 구매해서 들어갑니다. 1인당 15$ 정도였던 것 같네요. 요새 기억력이 별로라... ㅎㅎ.
뭐 꼭대기에는 대략 이런 풍경입니다. 날씨는 흐렸지만, 미세먼지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정말 멀리까지 보였습니다.
내려와서 퀘사딜라와 핫도그 등으로 허기를 채웁니다.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이 멕시코계였는데, 열심히 주문했으나 뭔가 잘못알아들었는지 음식이 잘못나와서 손짓 발짓 하면서 다시 설명을 하니 다른 직원 불러서 또 설명하고... 또 뭐라고 저한테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못알아듣고 아주 힘들었네요. (제가 히어링을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이 멕시코식 발음 알아듣기 너무 힘들어요)
# 호스트 부모님들과 저녁 식사 (Dinner with host family)
이날 저녁에는 큰애가 지내고 있는 집의 호스트 부모님들과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우리 아이를 호스팅해주고 돌봐주고 있으니, 감사의 선물도 전하고 얼굴보고 식사하는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큰애한테 물어보니 보통 호스트 부모와 만나는 일은 드물다고 하네요. 우리가 특이하다고...
이메일로 한달 전쯤 약속잡을 때는 "이날 일정이 있어서 될지 안될지 모르겠어. 그 주 되어봐야 확실히 알것 같아" 라고 해서 뭐 안되면 큰애 통해서 선물이나 전해주고 말지... 했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난다고 하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스테이크와 멕시칸 요리 중 고르라고 해서 이왕 텍사스에 왔으니 멕시칸! 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2월인데 옷들을 얇게 입고 다니십니다. 그런데, 자리를 야외에 잡아주시는군요. 그리고는 스탠드형 야외 버너(주차장이나 스키장에서 쓰는)를 옆에 가져다 주네요. 기후가 한국보다 따뜻하고 일교차가 있다보니 그냥 옷은 적당히 얇게 입고 추우면 히터로 해결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프레데릭스버그에서도 이런 야외 테이블과 함께 옥외용 히터를 쓰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호스트 아저씨는 저보다 5~6살쯤 많은 아저씨인데, 딸이 K-Pop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학생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저씨 본인은 젊었을 때 한국에 2년 정도 있었다고 하고 어디 가봤냐니까 '이태원'이라고 했습니다. 군인은 아닌데, 군부대 관련한 일을 하는 것 같았어요. 모터싸이클이 취미라서 이거 저거 이야기를 좀 했는데, 3만5천불짜리 할리데이비슨을 중고로 1만5천불에 샀다고 자랑하시더군요. 아주머니가 뭔가 불평을 하시던데, 맨날 주차장에서 오토바이에 뭔가를 계속 붙이고 있다...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남자들은 어디나 비슷한가봐요.
오기 전에 출퇴근길에 계속 영어방송 들으면서 훈련을 좀 하긴 했는데, 현지인과 대화를 하려하니 잘 안되더군요. 큰애는 온지 7개월정도 되었는데, 일상대화는 여유있게 잘 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 많이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종업원에게 기념사진 한장 부탁하고, LA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잠시 큰애를 빌려(?)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