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저는 양평에 세컨하우스를 짓고 있습니다. 공사는 막바지 단계인데, 문득 더 늦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글로 운을 떼나 고민했는데 우리 가족이 처음 아파트를 벗어나 타운하우스로 이사했던 때가 떠올랐네요.
마당 있는 집의 로망
아주 어렸을 적 시골에 살았을 때와, 도시로 전학온 후 몇 년간을 제외하면 우리 가족은 계속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제가 2002년 결혼 한 이후 2015년까지 13여년간도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네요. 그런데, 와이프는 결혼 전에 쭈욱 단독주택에 살았어서 저와는 조금 달랐던가 봅니다. 어느날 갑자기 '마당 있는 집'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마당이라면 단독주택으로 가야 하는데, 제 기억 속에 단독주택은 아주 어린 시절 '양옥'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동네 목수들이 대충 지어서 단열도 안좋고 춥던 할머니가 사시던 그런 집이었네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도시는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같은 지역, 같은 면적이라면 단독주택이 훨씬 비싸겠지요. 마침 저도 아파트의 지긋지긋한 층간 소음 문제에 질리기도 했고, 거대한 상자처럼 생긴 아파트가 비인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시기였습니다.
타운하우스?
엄마의 정보력이라 했던가... 와이프는 어디서 그렇게 정보를 듣고 오는지, 주말마다 저를 끌고 여기저기 타운하우스 분양 현장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요새는 단독주택이라 하지 않고, 업자들이 큰 땅을 사서 여러 채를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 파는 것을 타운하우스라 하더군요. 필지가 80평 정도로 작은 편이고 집 모양이 다 똑같아서 좀 단조롭게 보이긴 하지만, 그 덕에 인근 아파트보다 엄청 비싸지 않은 정도로 가격 형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용인 동백에서 32평 아파트가 3억대 중반 정도 했는데, 타운하우스 광고를 '4억대'로 했었는데요.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4억대 후반 모델도 있다... 라는 것이고 실제로는 이것 저것 옵션 넣고 하면 5억대 초반이었습니다.
기존에 살고 있던 아파트도 대출이 있던 터라, 대출을 거의 최대한으로 늘려서 타운하우스로 가야 하는 건지 우려가 있었지만, 초등학생 딸들이 타운하우스에 산다면 아파트 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좋은 추억이 많이 쌓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어떻게 좀 무리를 해서라도 이사를 가보자! 라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금붙이를 모두 팔고, 제가 타고다니던 투스카니 차량까지 팔아서 모두 집 계약금에 넣고 한동안 뚜벅이로 구로까지 출퇴근 했네요)
드디어 주택으로!
원래 처음에는 단지 중간열 정도에 있는 이미 지어진 집을 계약을 했었는데요.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파트를 떠나 자연과 가깝게 지내려고 비싼돈 들여서 타운하우스로 오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산쪽으로 아직 지어지지 않은 부지에 가봤는데, 숲이랑 바로 접해서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대표님에게 부지를 좀 바꾸겠다고 했더니 위쪽은 더 비싸다고 추가금을 내라고 하더군요. ㅜ.ㅜ
그래서 아직 덜 지어진 맨 뒤쪽 산에 접한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군요.
처음에는 마당에 잔디도 안깔려서 마사토 흙바닥이었고, 집 사이에 펜스도 없었습니다. 옆집 사람들도 너무 좋아서 매일 인사하고 먹을 거 서로 나눠먹고 그랬네요.
집 마당 끝에 배수로 부분에는 나중에는 경계용 메쉬펜스가 세워졌지만, 산주인(남양 홍씨 문중)에게 허락을 받고 텃밭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메쉬펜스에는 자비를 들여 출입문을 달았구요. 거의 마당과 같은 크기의 텃밭이었네요.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줄였지만요. ㅎㅎ
집에서 고기를 마음대로 구워먹기
아파트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데, 주택은 일상이 됩니다. 코스트코에서 마스터빌트라는 진짜 미쿡 사람들이 마당에서 쓰는 바베큐 기계를 사왔네요. 너무 무거워서 지하 주차장에서 뒷마당까지 패키지를 한번에 못들고 와서 부품을 하나씩 나른 다음 마당에서 조립했어요.
직화구이. 훈제구이, 조개구이, 돼지고기, 소고기, 조개구이... 등등 주말은 정말 행복한 고기 타임이었네요. 손님들도 많이 찾아왔구요.
직접 길러먹는 채소
모종을 사서 심은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고기 먹을 때 바로 신선한 채소를 뜯어와서 먹는 그 맛이란! 정말 비할 데가 없죠.
비가 와도 저렇게 밝은 표정으로 채소를 뜯어오는 둘째입니다. 어릴 적 좋은 추억만들어주기는 성공했네요.
마당에서 4계절 즐기기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전 부쳐 막걸리랑 먹고, 눈이 오면 눈사람 만들고, 추우면 난로 피우고, 여름이면 수영장 만들어 첨벙거리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 됩니다.
철따라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1년생 꽃들을 사와서 심어서 보고 즐기기도 합니다.
버킷리스트 색소폰 불어보기
대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케니G의 CD를 한장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루엣이란 앨범이었는데 그 아름다운 소리에 매혹되서 나중에 꼭 색소폰을 배워보리라... 라고 생각을 했었죠. 그러고 한동안 잊고 살았었는데, 어느날 와이프와 인사동에 갔다가 근처에 낙원상가가 보였습니다. 갑자기 색소폰 생각이 났죠.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고 갔는데 덜컥 알토 색소폰을 사버렸네요.
집들이 서로 떨어져있고, 요새 창호들은 밀폐력이 좋아서 소리가 잘 새어나가지 않더군요. 집에서 색소폰을 빽빽 불어대고, 나중에 옆집에 물어보니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노트북에 설치하는 반주 프로그램까지 구매해서 열심히 연습을 했더랬습니다. 지금은 분당에 있는 빌라로 이사를 와서 색소폰이 봉인상태에 있는데, 양평에 세컨하우스가 완성되면 다시 연습을 시작해야죠.
다락방의 추억
이 집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다락]
[3층] 방3 화장실 방4
[2층] 방1 화장실 방2
[1층] 주방 계단 거실
[지하주차장]
1필지가 80평인데 자연녹지이다 보니 건폐율이 20%밖에 안되는데 80평중에서도 또 도로지분으로 빠지는게 있다보니 건축면적이 13~14평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러니까 13평을 3층으로 쌓아올리고 지하에 주차장 넣고 꼭대기에 다락방 넣은 구조입니다. 지하주차장은 도로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도로 기준에서 보면 무려 5층 짜리 건물이 되는 셈이네요.
여튼, 둘째 방에 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다락방이 나옵니다. 다락이라 바닥 난방은 안되지만, 빔 프로젝터를 달아놓고 봄/가을에 영화 보는 재미가 쏠쏠했었습니다. 둘째가 여기를 자기 아지트로 만들고는 아무도 못 올라가게 했었네요.
대형견을 입양하다! 라브라도 리트리버
원래 말티즈 '해피'를 키우고 있었는데요. 마당이 있는 집에 살다보니, 좀 더 큰 개를 키워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갑자기 골든 리트리버에 꽂혀서 열심히 알아보고 다녔는데, 별도의 분양비 없이 주사 접종비만 내고 데려가라는 곳이 있어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말티즈 '해피'(3kg) 보다 작아서 괴롭힘을 좀 당했는데요. 이놈 사료를 엄청 먹어대더니 1주일에 1kg씩 불어서 3개월만에 20kg를 넘기고, 4~5개월 만에 성견 크기로 다 커버렸어요.
개들은 생후 2년까지는 집에 혼자두면 파괴지왕이 됩니다. 이빨이 간질거리기도 하고, 호기심과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요. (3년이 넘은 지금은 그냥 하루종일 외출하고 돌아와도 물건들이 멀쩡해요) 리트리버 '보리'는 그래서 한동안 마당에서 실외견으로 살았지요. 마당에서 지낸다고 사고를 안치는 건 아니구요. 키 작은 나무들을 모조리 뿌리채 뽑아서 정원을 황폐화시켰지요.
현재는...
큰애 학교 때문에 분당에 있는 작은 빌라로 이사와서 살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맛본 가족이라, 여기 생활은 많이 답답해합니다. 그래서, 세컨하우스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개봉박두!!